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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토산주는 지하 182m 깊이로 파서 나오는 지하수를 토속주 만드는 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곳의 물맛은 극히 뛰어나 다른 지역에서는 산성막걸리의 독특한 맛을 낼 수 없다.

16세기 금정산성 축성 때 군졸들이 먹기 위해 만들었던 쌀 술, 즉 산성막걸리는 78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지역 특산물로 양성화 된 후 생산되기 시작하여, 현재 제조회사인 유한 회사에서 독점하여 생산·공급하고 있으며 금성동 외 다른 지역으로 외부출하가 금지되어 있었으나, 2001년부터는 가능하게 되었다.

부산의 산성막걸리는 우리나라 막걸리 중에서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어 있다. 산성막걸리는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 금정산 해발 450m에서 빚어져 맛이 독특하다. 도심 속의 산속인 금정산성부락 30여 가구가 산성막걸리의 본산지이다. 또한 제조 공정이 전통 양조 방식을 그대로 따르며, 일체의 인공재료는 사용하지 않는 자연 발효주이다. 산성토산주는 금성동에 손님이 많은 봄과 가을이 성수기로, 마을을 상대로 생산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편이다.

산성막걸리는 그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곳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데서 비롯된다.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키 위해 금정산성을 축성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이 늘어나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성을 쌓기 위해 각 지역에서 징발된 인부들은 막걸리 맛에 반해 축성공사가 끝난 후,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후, 산성막걸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보급됐고, 일제시대에는 널리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일제 때는 고유의 맛을 지닌 이 막걸리가 더욱 알려져 금정산성에서 누룩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드는 차이에 따라 부산 동래를 비롯한 동부 경남 일원의 곡물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할 정도로 시장을 좌지우지하였다고 한다. 1960년부터 정부의 누룩 제조 금지로 한 때 밀주로 단속을 받았으나 주민들은 단속의 눈을 피해 술을 빚어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80년 전통민속주 제도가 생기면서 민속주 제1호로 지정 받았다.

금정산성마을은 평지보다 기온이 4도 정도 낮아 여름의 휴식처로 이름난 곳이며, 더불어 이곳의 250년 역사를 지닌 산성막걸리도 전국에 널리 알려져 염소 불고기와 함께 이 마을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산성막걸리는 껍질이 두꺼운 재래종 밀로 누룩을 만들어 빚어야 술맛이 좋다. 마을 입구의 자연 공원과 토성 안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맑은 계곡과 산림 속에 자리잡아 토속주의 마을로 적격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조법

금정산성 토산주는 순전히 재래식의 제조방법에 의해 재래식 기구로 만들어진다.
금정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에 밀을 씻고 부셔서 밟는다. 그리고 누룩 틀에 넣어서 동그랗게 형태를 만든 다음 누룩 띄우는 장소인 누룩 집에 넣어서 실내온도 48~50도 정도가 되게 하여 띄운다. 누룩에 곰팡이가 피면 공기 창을 열고 누룩이 마른 다음 곰팡이를 제거한다. 밀을 부셔서 곰팡이를 띄우는 기간은 약 15일 정도가 소요된다.

쌀로 고두밥을 만들어 식혀서, 가루로 부셔 띄운 누룩과 버무려서 물과 섞어서 발효탱크에 저장한다. 이때 쌀 140kg에 누룩 80kg, 물은 약 10말 정도의 비율로 한다. 고두밥은 덩어리 없이 누룩과 버무려 눌러서 약 20도 이상의 온도로 하여 저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 정도 지나면 술이 되는데 완숙된 술을 거르려면 일주일 정도 걸린다. 일주일 후에 제성기로 술을 걸러 시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