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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청사는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국청사의 현판에는 '숙종 29년(1703년)금정산성 중성을 쌓은 후 적을 막고 지키어 나라를 보호하니 그 이름을 국청사라 칭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그 이름의 뜻도 '청정한 마음으로 수행과도 같이 국난을 극복하는데 앞장서다' 혹은 '나라가 외적의 더러운 발길에 짓밟힘을 막고 깨끗한 국토를 수호한다.'라는 것이다.

이 곳에는 당시 승병장이 사용한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인이 보관되어 있어 이것을 보아 승군작대의 사령부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호국영령의 상징인 증거물로 스님들의 구국의 뜻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국청사는 금정산성 성내 사찰인 해월사와 더블어 금정산성을 방어한 호국사찰로 등장하고 있다.

▶ 금성마을과 국청사(國淸寺) 전설
산성마을이 폐허로 버려져 있을 때 경남 양산군 철마면(현재 기장군)에 살던 힘이 좋기로 소문난 김 장사(壯士)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다. 그는 한꺼번에 수십명의 장정들을 상대로 힘 겨루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고, 혼자서 팥 한 섬을 김해에서 지고 오기도 했다. 더구나 그는 호랑이가 뒤에서 잡아당겨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하의 김 장사도 처음 국청사 자리에 거주지를 마련했다가 밤마다 전쟁중에 죽어간 이들의 신음소리와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무서워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국청사가 세워진 뒤에도 법당에서 염불을 하면 전쟁중에 죽어가는 신음소리 , 날짐승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나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82년 스님들이 지장보살 보원삼층탑을 세우고 떠도는 넋들을 극락세계로 천도한 이후부터는 청정한 기도도량이 됐다 전해지고 있다..

◎오시는길
[자가용]
-부산고속국도1번→구서IC→온천장→식물원입구→동문입구-산성마을→국청사→부산교육원
-화명롯테마트→북구보건소→산성로→서문입구→산성마을 →국청사→부산교육원
[지하철]1호선 온천장역→203번→산성마을→국청사→부산교육원
[버스]
- 동래:지하철1호선 온천장역→203번→산성마을→국청사→부산교육원
- 구포:덕천교차로→산성마을버스→서문입구→산성마을→국청사→부산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