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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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암은 현재 범어사 11개 암자에 속해 있으며, 총면적 1,455평방미터, 범당 2동과 요사 1동이 소재하고 있으며 전통사찰 중 하나로 조선 중기(1700년대) 진목대사가 창건하였으나 확실한 연대는 알지 못한다.

그 증거로 해월사 상량기문 현판 2개가 정수암에서 발견됨에 따라 해월사가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난 후 정수암으로 이전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몇 년 전 도난 당한 칠성탱화틀 속에서 발견된 사리 15과가 모셔져 있는 오층사리탑이 대웅전 앞에 우뚝 솟아 있고 대웅전 뒤로 곧게 뻗은 적송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연못에 드리워진 모습은 오래된 사찰의 영험함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정수암의 전신 사찰인 "해월사"
금정산 고당봉과 원효봉의 깊은 계곡인 사시골에 위치한 부산교육원 입구의 좌측면에 삼각형으로 된 자연 탑이 있는데 이 곳이 금정산성방어 사찰로 알려진 해월사지터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교육원의 도로가 절터 한 가운데로 나 남북으로 갈라 놓았다. 수련교 북쪽은 논밭으로 개간되어 정수암과 개인 소유로 농사를 지어 오다가 근래는 그냥 내버려져 황무지로 잡초만 우거져 있다. 정수암 앞과 부산교육원 및 야영장 밑의 논밭, 중성까지의 약 2만여 평이 해월사지라고 추정한다.

한때 향불이 피워지고 부처를 향한 기도와 염불소리, 목탁소리가 여느 절에서처럼 어우러지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금정산성 내성을 방어한 해월사가 지금은 이름조차 전하지 못하고 풀 섶에 묻힌 절터로 남아 있다.

“海月”이란 절 이름의 어원은 “바다에 달이 맑아서 그림자가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홀로 스스로 미혹했도다(海月登務影/遊漁獨自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원에서와 같이 해월사의 위치는 고당봉과 원효봉 사이의 사시골이라 노송과 법수가 어울린 명당지로 앞으로는 바다에 다다르는 고기가 노니는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뒤에는 고당봉이 있어 도량이 위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해월사 관련 문헌으로는 <동래부지>(불우편)의 “해월사는 남문 내에 조성되었다.”는 부분과 19세기 말의 <동래읍지>의“북문 내에 위치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부산문화재>(1993)<금정산성편>에 "평상시에도 산성 내에 있었던 양사(국청사,해월사=미륵암)의 승려 100여명과 범어사의 승려 300명으로 수비케 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같이 서로 엇갈리는 여러 기록들은 정확한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단순한 추정에 그쳐 해월사의 실체는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연석탑에서 20m 떨어진 정수암에서 해월사의 현판 2장이 발견되면서 이 자리가 해월사지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정수암의 독성각에서 나온 현판 1에는 “海月佛經營...”이라고 적혀 있어 이 현판이 해월사의 상량기문임을 분명히 해 주었다. 상량기문에 의하면 “1708년(숙종34, 강희47)4월 9일에 중창.... 기둥이 썩고 기와가 오래 되어 비가 새 신도들의 보시로 불사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중한 명단도 함께 적고 있다. 또 다른 해월사 현판 2의 중창 상량기문에는 ‘1745년(영조21, 건륭10) 9월 3일에 건물을 헐어 새롭게 중수했다’고 적혀 있다.

이로 인해 해월사는 금정산성을 방어했던 사찰로 내성의 북문과 서문을 관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정수암의 전신 사찰이 해월사였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란다.. [주영택 향토사학자]